2009-04-28

étude pour sérigraphie










감광시간이 관건.

숨쉬기


숨구멍

2009-04-26

that fascinating hydrangea

청보랏빛 수국을 세줄기 샀다. 정확히 말하면 하늘색에서 청보라색으로 바뀌어가는 정도의 색이었던 것 같다. 그 중 한줄기는 거의 하늘색이었다. 찌는 듯한 더위에 싱싱하게 살아있는 것은 그 셋이 전부인 듯 했다. 그 창백한 색은 어쩐지 처연하고 매력적이었다.

나는 소매가 없는 옅은 베이지색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있었다. 그 블라우스는 몸에 잠시 달라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했다. 4시가 다 되어서 연희동에 도착했다. 그 커피집의 주인부부는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 없었고, 역시나 그랬다. 8월의 여름에 홀로 앉아 뜨거운, 정말 뜨거웠던 커피를 마시는 둥 마는둥 하며 'Mourning and Melancholy'따위의 책을 읽으려니 어쩐지 프로이트의 분석하고 따지고 드는듯한 말투가 거슬려 책을덮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나가려하니 여자주인이 흰색의 아무런 무늬없는 긴 종이컵에 뜨거운 커피를 담아주었는데, 그 종이컵의 모양이 무척마음에 들었다.

곧바로 집으로 가려고하니 저녁 6시즈음이라, 차가 막히기시작했다. 그 시간의 양화대교는 언제나 차가 많았었다. 해가 지고 있었는데 여름의 하늘은 왜 높을까라고 생각하니 여의도에서 먹었던 파이가 생각났다. 단지 재료의 밀도만 높은 그런 맛이었다. 차 안의 스피커에서는 'Milonga for 3'가 흘러 나오고 있었는데, 그 쯤엔 나의 유일한 사각의 아무 무늬도 없는 투명하기만 한 높은 유리병에 수국을 꽂을 생각만 했었던 것 같다. 그 긴 화병과 수국의 형태의 밸런스에 젖어 있을때, 프랭크 자파가 노래를부르기 시작했다. 'I have been in you'. 지나치게 로맨틱하여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꽉 막혀있는 다리위에서 프랭크자파가 노래를 하니 브라이튼의 풍경이 조각난 채로 재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모든것이 지나가 버린 일이었다.

2009-04-21

Anita Berber


Anita Berber (June 10, 1899 – November 10, 1928) was a German dancer, actress, writer, and prostitute who was the subject of an Otto Dix painting. She lived during the Weimar period.
Born to divorced bohemian parents (a cabarét artist and a violinist), she was raised mainly by her grandmother in Dresden. By the time she was 16, she had moved to Berlin and made her debut as a cabaret dancer. By 1918 she was working in film, and she began dancing nude in 1919. She was scandalous, androgynous and infamous, quickly making a name for herself on the Berlin scene. She wore heavy dancer’s make-up, which on the black and white photos and films of the time came across as jet black lipstick painted across the heart-shaped part of her skinny lips, and charcoaled eyes.
Her hair was cut fashionably into a short bob and was frequently bright red, as in 1925 when the German painter Otto Dix painted a portrait of her, titled "The Dancer Anita Berber". Her dancer friend and sometime lover Sebastian Droste, who performed in the film Algol (1920), was skinny and had black hair with gelled up curls much like sideburns. Neither of them wore much more than lowslung loincloths and Anita occasionally a corsage worn well below her small breasts.
Berber's cocaine addiction and bisexuality were matters of public chatter. She was allegedly the sexual slave of a woman and the woman's 15-year-old daughter. She could often be seen in Berlin's hotel lobbies, nightclubs and casinos, naked apart from an elegant sable wrap, with a pet monkey and a silver brooch packed with cocaine. Besides being a cocaine addict, she was an alcoholic, but at the age of 29, gave up both suddenly and completely. According to Mel Gordon in The Seven Addictions and Five Professions of Anita Berber, she was diagnosed with galloping tuberculosis while performing abroad. She died on November 10, 1928 in a Kreuzberg hospital and was buried at St. Thomas cemetery in Neukölln.
A 1987 film by Rosa von Praunheim titled Anita - Tänze des Lasters centres around the life of Anita Berber.
A plaque outside Anita Berber's house in Berlin.The band Death in Vegas named a song after her, and is on the album Satan's Circus.

2009-04-15

étude pour sérigraphie



stylographe sur le papier, 20x20cm


더 날카롭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것이 필요하다.

2009-04-13

Avril











분위기 쇄신을위해 모범사례1.

열심히 작업을 하시지만 너무 더럽긴하구나.

4월의 지랄병은 떨쳐버리고 할일과, 해야할일과, 하고싶은일을 해야겠다.

2009-04-05

곧 지우게 될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늘도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회의와 환멸감에 몸서리치고 있다. 아, 이번 한주는 또 어떻게 보내나. 대충 적당히 살아가면 다시 또 한 주가 오고 또 한 주가 오고 계속 반복되겠지. 그 어떤 의미도 찾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지나가는 풍경이 시시하고 무기력해 보인다.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다니, 나는 아직 살아있는 것인가. 어떤 것에도 무관심하다 생각했는데 과도할 정도로 관심이 많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관심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오늘도 나는 평소대로 살아 갈 것이고 내일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넘치는 배설물들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인간들은 무엇을 위해서 쉴 새 없이 말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또한 얻고자 하고, 필요로 하는 것일까. 무언가를 쏟아 내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내 스스로 그러한 자신을 볼 때면 견딜 수 없이 내 자신이 혐오스럽다. 이들과 그들이 그리고 내 자신이 쏟아내는 배설물이 가득 차, 더 이상 아무런 숨 쉴 곳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머리는 이미 활동을 멈추고 단지 반사적으로 반응 할 뿐이다. 굳이 헤아려 본다면 어느 순간엔가 부터 그러한 날이 대부분이며 나는 내부로 더 깊이 가라앉고 있음을 느낀다.

어떤 순간이 있었다. 눈을 감고 거대하게 밀려오는 어둠의 양을 꽤나 힘들게 받아들이고 있을 찰나에,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눈길이 보였다.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발등을 덮을 정도의, 미세하지도 거칠지도 않은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눈이 쌓여있었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 길을 걸어오고 있었던 듯 했다. 아마 나는 그 진행의 도중에 그것을 인지했다보다. 나는 계속 걷고 있었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걷고 또 걷고 끝없이 걸었다. 어떠한 방향도 이유도 모른 채, 아니 그런 것들을 인지하고자 하는 욕구도 또한 필요도 존재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사방이 온통 끝없는 하얀색 이었고, 내가 볼 수 있는 끝부분은 아마 지평선을 그리고 있었을 텐데, 그 색의 경계가 내가 알고 있던 어떠한 색보다 미묘하게 비슷한 것이어서, 구분하기 힘들었고, 나는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찾고 싶지도 않았었던 것 같다. 한참을 오랫동안 걸었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엔가 내 발밑에는 곧게 그어진 선이 나타났다. 내가 본 그것 중에 아마 가장 정확하고 섬세하며, 예리하고 또한 날카로운 것이었던 것 같다. 그것의 정확함은 공포를 자아내기에도 충분했고, 감탄해 마지않을 것이기도 했다. 그 날카로운 선의 시작으로부터는 까만색의 공간이 있었다. 어떤 설명이나 묘사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무심한 까만색이었다. 물성, 질감, 온도 따위를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를 할 겨를도 없었을 뿐더러,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몸을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걸었던 흰색의 눈길의 단면이 보였다. 아마 한 뼘 정도 되는 듯 했다. 나는 구부렸던 몸을 바로 세우고, 아마도 한참을 미동도 없이 서 있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눈을 뜨고, 다시 눈앞에는 익숙한 풍경속의 창문이 있었고, 적당히 투명한 정도의, 아니다. 꽤 투명했었던 것 같은, 약간 어두운 코발트색의 어둠이 있었고, 습하고 따뜻한 공기에 가끔 차가운 바람이 힘없이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곧 사라지고 있었다.

2009-04-03

여름.





등교길에 지하철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물결위에서 콘크리트 다리의 그림자가 기차의 그림자속으로

하나씩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는데,

그 풍경이 묘하게도 재미있고 새삼스러워

아, 이런것이 살아있는 즐거움인가 싶다가,

그 사이 잠깐 이 모든게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것을 깨닫는 찰나,

지난여름 햇볕이 내려쬐는 여의도 빌딩숲속 어딘가에서,

Nina Simone의 Newport에서의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를

듣고 이렇게 침울한 해석이라니- 라고 생각하며,

Isley Brothers의 summer breeze를 재생시키고, 한참을 오래 걸었던 기억이 났다.

실기실










작업은안하고.

2009-04-01

아름답다.

죠슈아가 말하길,

시애클 도서관이 오픈하기 전에는
다들 건물이 못생겼다 하다가
사람들이 그 건물에 들어가본 후에는
못생겨도 상관없다든가 아름답다는 반응으로 바뀌었다는데

이건
못생겼다 생각한 아기가
웃고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서는
귀엽다 느낀 것과 같은 맥락인가.



어쨌든 스펙타클로 승부를 볼 수 있다는건 현재로선 진리.



하지만 못생긴 여자에겐 적용되지 않는 법칙이라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