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5
곧 지우게 될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늘도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회의와 환멸감에 몸서리치고 있다. 아, 이번 한주는 또 어떻게 보내나. 대충 적당히 살아가면 다시 또 한 주가 오고 또 한 주가 오고 계속 반복되겠지. 그 어떤 의미도 찾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지나가는 풍경이 시시하고 무기력해 보인다.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다니, 나는 아직 살아있는 것인가. 어떤 것에도 무관심하다 생각했는데 과도할 정도로 관심이 많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관심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오늘도 나는 평소대로 살아 갈 것이고 내일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넘치는 배설물들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인간들은 무엇을 위해서 쉴 새 없이 말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또한 얻고자 하고, 필요로 하는 것일까. 무언가를 쏟아 내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내 스스로 그러한 자신을 볼 때면 견딜 수 없이 내 자신이 혐오스럽다. 이들과 그들이 그리고 내 자신이 쏟아내는 배설물이 가득 차, 더 이상 아무런 숨 쉴 곳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머리는 이미 활동을 멈추고 단지 반사적으로 반응 할 뿐이다. 굳이 헤아려 본다면 어느 순간엔가 부터 그러한 날이 대부분이며 나는 내부로 더 깊이 가라앉고 있음을 느낀다.
어떤 순간이 있었다. 눈을 감고 거대하게 밀려오는 어둠의 양을 꽤나 힘들게 받아들이고 있을 찰나에,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눈길이 보였다.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발등을 덮을 정도의, 미세하지도 거칠지도 않은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눈이 쌓여있었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 길을 걸어오고 있었던 듯 했다. 아마 나는 그 진행의 도중에 그것을 인지했다보다. 나는 계속 걷고 있었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걷고 또 걷고 끝없이 걸었다. 어떠한 방향도 이유도 모른 채, 아니 그런 것들을 인지하고자 하는 욕구도 또한 필요도 존재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사방이 온통 끝없는 하얀색 이었고, 내가 볼 수 있는 끝부분은 아마 지평선을 그리고 있었을 텐데, 그 색의 경계가 내가 알고 있던 어떠한 색보다 미묘하게 비슷한 것이어서, 구분하기 힘들었고, 나는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찾고 싶지도 않았었던 것 같다. 한참을 오랫동안 걸었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엔가 내 발밑에는 곧게 그어진 선이 나타났다. 내가 본 그것 중에 아마 가장 정확하고 섬세하며, 예리하고 또한 날카로운 것이었던 것 같다. 그것의 정확함은 공포를 자아내기에도 충분했고, 감탄해 마지않을 것이기도 했다. 그 날카로운 선의 시작으로부터는 까만색의 공간이 있었다. 어떤 설명이나 묘사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무심한 까만색이었다. 물성, 질감, 온도 따위를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를 할 겨를도 없었을 뿐더러,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몸을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걸었던 흰색의 눈길의 단면이 보였다. 아마 한 뼘 정도 되는 듯 했다. 나는 구부렸던 몸을 바로 세우고, 아마도 한참을 미동도 없이 서 있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눈을 뜨고, 다시 눈앞에는 익숙한 풍경속의 창문이 있었고, 적당히 투명한 정도의, 아니다. 꽤 투명했었던 것 같은, 약간 어두운 코발트색의 어둠이 있었고, 습하고 따뜻한 공기에 가끔 차가운 바람이 힘없이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곧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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